▲대전 중촌사회복지관 지역아동센터장으로 복직한 석승현 씨. ⓒ에이블뉴스

23살의 씩씩한 청년 석승현
석승현(33 뇌병변장애 1급) 씨는 지난 1999년부터 대전 충촌사회복지관(관장 이무형)에서 근무했다. 병원에 가는 장애인들을 차로 태워다주는 등의 장애인 관련 업무와 도시락서비스 같은 재가복지업무가 그의 일. 180이 넘는 큰 키에 해병대 출신의 씩씩하고 건강한 청년 승현 씨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무거운 것도 번쩍 번쩍, 힘든 일도 척척 해내는 인기맨이었다.

낮에는 그렇게 복지관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일을 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던 23살 순수 청년 석승현 씨. 그러나 2003년은 그에게 8년간의 지독한 아픔을 몰고 온 시련의 해였다.

“어느 날 집에서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걸어가다가 갑자기 꽝하고 넘어졌어요. 일어나는데 또 넘어지더라고요. 일어나다 넘어지고 일어나다 넘어지고, 한 일곱 여덟 번을 넘어졌나. 이상하긴 한데 그러다 괜찮아지겠지 했죠. 그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지식이 전혀 없었으니까 병원에 바로 안 갔죠. 그런데 쓰러지면서 소대변이 다 나오는 거예요.”

그러고도 한참을 있다가 병원에 갔지만 이번에는 또 의사가 외출하고 없어 혈전용해제를 투여하지 못했다.

“간호사가 우물쭈물 기다리다 시간 다 보내고 나중에 의사가 와서 혈전용해제를 투여했는데, 세 시간이 지나버렸어요. 원래 세 시간 이내 투여하면 90% 이상 회복이 된다고 하는데…….”

죽어가는 한 쪽 뇌
그렇게 그의 오른쪽 뇌는 죽어갔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병실로 옮긴 지 일주일만에 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뇌에 부종이 생겨 뇌압이 높아졌고, 뇌혈관들이 막혀 왼쪽 뇌도 죽어간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두개골을 열고 7시간에 걸친 첫 번째 뇌수술에 들어갔다.

“딱 깨어 보니까 오른쪽 머리가 없는 거예요. 왼쪽 뇌를 살리기 위해 오른쪽 뇌를 아예 잘라냈다는데, 아주 한쪽 머리가 푹 파여져서 없는 거예요. 공상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는데, 진짜 이상했죠.”

그 후로도 수술은 계속됐다. 뇌에 염증이 생겨서 두 번째 수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인공 두개골로 머리를 덮는 마지막 수술에 재활치료까지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6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충북대병원에 입원했는데, 재활병원이 한 두 달 있으면 퇴원하라고 해요. 보험수가 때문에. 그래 이 병원 저 병원 대전에 있는 병원이란 병원은 다 돌고 난 다음에 분당으로, 서울로 갔죠. 경기도권에 재활병원이 많더라고요.”

국립재활원을 비롯해 서울과 가평 등 경기도 일원에서 스무 군데도 넘는 병원을 전전하며 재활치료에 몰두했다. 최고 오래 입원한 곳이 경기도 광주 삼육재활병원에서의 6개월, 그 외에는 2~3개월에 한 번씩 옮겼다. 입원하면서 바로 다음에 갈 다른 병원을 찾아서 예약하고, 퇴원과 동시에 다시 입원과 예약을 반복하는 생활이 6년.

“6년간 병원을 전전하다가 퇴원해보니 세상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대전에 없던 지하철도 생기고. 제가 알던 대전이 아니라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23살 당시, 중촌사회복지관에서 장애인 관련 업무와 재가복지 업무를 담당하던 모습. ⓒ석승현

새로 시작하는 삶은 무섭기만 하고
사람들이 무서웠다. 저 사람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 사람 쳐다보기가 겁났다. 눈길을 마주치기 겁나 피하고 외면하다보니 일은커녕 외출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스스로 생각에 80~90% 정도는 재활이 된 것 같은데도 여전히 왼쪽 팔은 아예 사용할 수가 없고 다리도 그저 걸을 수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자신감이었다.

“제가 워낙 긍정적인 생각이라, 그리고 크리스천이거든요. 그러니 집에만 있을 수 없잖아요. 그 많은 수술비 감당하시느라 부모님이 무지 고생하신 걸 제가 또 아니까.”

2007년 7월, 석승현 씨는 집 근처 동사무소에서 행정도우미 일을 시작하면서 차츰 용기를 되찾게 되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수기 공모에 응모해 당선되기도 했다. 급기야 2010년 8월, 첫 직장이었던 중촌사회복지관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부장님이, 승현아! 우리 예전처럼 다시 같이 일해보자! 하시는데, 아! 정말 눈물이 왈칵 쏟아질만큼 좋기는 한데, 동시에 겁도 와락 나더라고요.”

첫 직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일했던 그 곳에서 다시 와서 함께 일하자는데, 왜 선뜻 나설 수가 없는지.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찬찬히 생각했다.
그전처럼 운전도 못하고, 무거운 것도 못 들고, 힘도 없는데. 심지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은데, 괜히 일한다고 했다가 다른 직원들한테 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여기는 되게 오고 싶은 곳이었어요. 첫 직장이었고 관장님도 참 존경하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복지관에서는 남자 직원들이 힘을 많이 써야 되요. 건강한 사람도 힘든데 내가 이런 몸으로 다시 할 수 있을까. 가고는 싶은데 불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말씀을 드렸더니 ‘너도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하죠.”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한 견학 사진(우측 상단은 아이들이 보내준 편지). ⓒ석승현

8년만의 복직, 다시 엄습한 두려움
그리고 2010년 9월 1일, 석승현 씨의 8년만의 복직 첫 출근 날. 밤잠도 설친 승현 씨는 새벽부터 출근 준비에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7시 반에 복지관에 도착했다. 아직 한 참 이른 시간이었지만 도저히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설레임과 기대만큼 두려움도 컸지만 사랑하는 복지관, 병실에서 내내 그리웠던 그 곳을 한 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기에.

“딱 도착하니까 진짜 막 흥분되고 가슴이 뛰더라고요. 아무도 없었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한 바퀴 휘 돌아봤죠. 복지관 주변을 돌면서 추억에 잠겨 보고, 또 복지관 안에 들어와서 따뜻한 추억도 새겨보고. 저희 복지관은 밖에서 보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거든요. 안이 너무 환하고 예뻐요. 관장님이 의자 같은 것도 다 리폼을 해서 아기자기 만드시고 해서 너무 예쁘거든요. 되게 좋아요.”

당시 뵙던 어르신들과 만나니 갑자기 없어져서 궁금했다며 환하게 웃어주고. 함께 놀아주던 어린이집 아이들이 벌써 중․고등학생이 되어 선생님을 알아봐주었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동료 몇 명도 그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모두 건강했던 자신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구원병처럼 느껴졌다. 그 곳은 고향이었다.

석승현 씨는 지금 중촌복지관 부설 지역아동센터장으로 근무 중이다. 이 곳을 이용하는 아동은 27명. 모두 초등학생이다.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이 와서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하고 특별활동도 하고 저녁도 먹는 곳. 이 곳에서 요즘 아이들과 일상을 보내고 있다.

조카가 자식보다 더 귀여울 것 같다고 할 만큼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처음에는 솔직히 이 곳 아이들이 두려웠다. 조심할 줄 모르고 덤벼들고, 상대방 배려하기보다는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는 아이들, 뇌수술로 약간 사시가 된 눈을 보고, 또 못 쓰는 팔과 다리를 보고 놀려대는 아이들에게서 상처도 입었다.

“처음엔 무섭더라고요. 부장님께 의논을 드렸죠. 아이들이 다 그렇다고 마음에 두지 말라며 용기를 주시더라고요.”

장애를 가졌다고 특별히 봐주지 않고, 혼내기도 하고 격려도 하며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대해주는 부장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부장님의 가르침에 처음엔 힘도 들었지만 스스로 더 노력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자신은 그만큼 더 당당해지고 있다는 석승현 씨. 그에게 중촌 복지관의 모든 직원은 ‘멘토’였다.

마음으로 만나는 아이들
“지금은 괜찮아요. 어디를 가나 좀 힘든 애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결국은 그 애들도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 것이거든요. 그 애들 얘길 들어줘야 되요. 따로 불러서 들어주고 둘이서 얘기하면 또 알아듣더라고요. 그리고 영웅심리가 있는 애들은 좀 띄워주기도 하고요. 아무튼 대화가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센터에 근무한 지 이제 4개월째. 그는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기보다 아이들의 마음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속 썩이고 함부로 대하던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던 그가 최근엔 집에 가면 그 아이들이 보고 싶을 정도로 정도 들었다.

“지금 제일 힘든 점은 아이들이 속을 썩이는 게 아니라, 그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겁니다.”
베드민턴도 함께 치고 싶고, 레슬링도 하고, 기타도 가르쳐주고 싶다. 해병대 출신의 레슬링 잘하고 기타도 잘치며 운동 좋아했던 건강한 청년 석승현이 문득 문득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 모든 것을 대신할만큼 충분할 마음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천천히 다가가 마음을 열어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안아주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의 아빠가 된 듯 한 느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저희 엄마가 굉장히 알뜰하시거든요. 저도 엄마를 닮아서 돈 모으는 데는 자신 있어요. 예쁜 조카를 보면 솔직히 일가를 이루고도 싶죠. 날은 잡혀있는데 여자가 없습니다. 하하하.”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항상 스스로 되뇌이는 석승현 씨.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한 것은 아니다는 그는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도와주는 분들께 보답하는 길은 자신이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곧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행복한 세상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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