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도우미 도움받아 수업하는 서강대 최성민씨
"눈,귀 불편해도 마음은 넓어..희망주는 시인이 꿈"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지난 18일 오후 서강대 가브리엘관 강의실. 맨 앞줄 한가운데 자리는 변함없이 최성민(26.신문방송학과)씨와 채민주(23.여.경영학과)씨 차지다.
수업 전 필기 준비를 하며 공책을 편 다른 학생들과 달리 이들은 최씨 가방에서 노트북과 키보드를 꺼내 연결했다.
강의가 시작되자 채씨는 키보드로 교수님의 강의를 빠짐없이 받아치기 시작했다. 최씨는 교수님을 보는 대신 큼지막한 검은색 글씨로 쉴새없이 채워지는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강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다.
2008학번으로 서강대 신방과에 입학해 어느덧 4학기째를 맞은 최성민 씨는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시각ㆍ청각 장애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최씨는 자라면서 아예 왼쪽 눈은 볼 수 없게 됐고 오른쪽 눈은 0.3 정도의 시력이 나온다. 12살 때 귀에 종양이 생겼는데 그 사실을 뒤늦게 아는 바람에 20살 때부터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게 됐고 뇌병변도 앓고 있다.
노트북을 통해 `글자크기 32'로 기자와 필담(筆談) 인터뷰를 한 최씨는 23일 "소리까지 전혀 들리지 않자 '왜 나를 이렇게 낳아준 거냐'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못할 소리도 하며 방황했지만 부모님은 내가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묵묵히 기다려주셨다"고 말했다.
방황을 접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최씨는 23살에 '장애우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경남 김해가 고향이라 학교에서 10분 가량 떨어진 하숙집에 혼자 사는데 한 학기에 15학점을 수강하는 `빡빡한' 대학생활을 버텨내는 건 필기와 강의실 이동을 도와주는 6명의 친구 덕분이다.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만난 '이동도우미' 2명과 '대필도우미' 4명이 최씨의 '손과 발' 노릇을 톡톡히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과목 대필 도우미를 맡은 채민주씨는 "내가 수업시간에 잠시 졸아서 오타를 치면 성민학생이 옆에서 어깨를 톡톡 치며 '여기 틀렸다'고 가르쳐준다"며 웃었다.
그는 "처음엔 내가 이해를 못 하거나 제대로 필기를 못해서 오히려 공부에 방해되지 않을까 부담됐다"며 "성민학생이 지각, 결석은 한 적도 없고 수업 도중에 예고 없이 쪽지시험을 봐도 답을 척척 써내려가서 내가 오히려 자극받는다"고 말했다.
최씨의 강의시간표에 맞춰 수업 시작 15분 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이동 도우미 허원구(26.영문과)씨는 강의실까지 최씨를 안내하고 책상에 노트북을 설치해 인터넷을 연결하는 일을 도와준다.
점심에는 학교 식당에서 식판을 받아다 주고 최씨와 같은 하숙집에 사는 터라 함께 등ㆍ하교하기도 한다.
허씨는 "성민이가 집에서 확대 독서기를 놓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민이가 언젠가 '고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친구의 마음이 전해져서 흐뭇했다"고 말했다.
'이동 도우미' 대학원생 최혜진(25.여)씨는 "한번은 성민이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는데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는 먼저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자기가 넘어졌는데 놀란 나부터 배려하는 마음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때론 내가 성민학생의 도우미를 하는 게 아니라 성민학생이 내 삶의 도우미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건강 탓에 1년 내내 학교를 다닐 수 없어 벌써 여러번 휴학을 했고 얼마 전에는 쓰러지기까지 했지만 늘 한걸음씩 천천히 전진하고 있다.
친구에게 부탁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자취방에서 확대경이 달린 독서기로 읽어내려가고, 노트북 한글프로그램에서 글자크기를 30이상으로 키워 리포트를 쓰면서도 꾸준히 공부한다.
최씨는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시작(詩作)' 수업을 들었는데 이때 시 쓰는 걸 좋아하게 돼 습작을 하고 있다. 장래희망도 시인이다.
그는 "몇 차례 응모한 신춘문예에서 결과가 신통치는 않았지만 앞으로 계속 도전할 것"이라며 "나는 눈과 귀는 불편해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크고 선명하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yjkim8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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