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장애인’을 다루는 학문은 사회복지학, 특수교육학, 재활공학 등이었다. 이들 학문은 전통적으로 장애를 신체적·정신적 비정상 내지는 결함으로 이해하고, 그런 장애인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런 학문을 전공한 사회복지사, 특수교사, 재활치료사 등 전문가들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신체기능, 지적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이런 ‘전문가 중심’의 학문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 단체를 중심으로 한 비판이 제기됐고, 이에 장애인 스스로 권리 쟁취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권운동이 일어났다. 이런 흐름에 맞춰 등장한 학문이 바로 ‘장애학’이다. 장애학은 치료와 재활 과정에만 집중했던 다른 학문의 접근과는 달리,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자립적 존재로 살아가도록 하는 학문적 실천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장애학은 영국의 리즈대학(Leeds University), 미국의 일리노이 주립대학(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등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장애학 연구자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고려대학교 보건과학과 전지혜 연구교수

그렇다면, 장애학은 누가 연구해야 할까? 이 문제는 장애인운동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과 직접 연결되기도 하는, 매우 깊은 역사를 가진 논쟁이다. 이에 대해 고려대학교 보건과학과 전지혜 연구교수는 26일 늦은 4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장애학포럼 발표에서 “장애학의 연구주체는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필수 요건으로 견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 연구교수는 “장애학은 장애인 자체를 대상화하지 않는다”라고 장애학의 특징을 설명했다. 이를테면, 특수교육학에서는 장애학생을 하나의 실험연구의 대상으로 보고 교육적 개입의 결과를 사후적으로 측정하는 등의 작업을 하지만, 장애학은 그런 연구방법을 채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장애학은 장애와 장애인을 제약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와 환경에 주목”한다면서 “사회적·정치적·경제적·역사적 조건과 장애의 생산, 구성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장애학의 주요 관심사”라고 설명했다.

물론 장애학의 관점이 이런 사회적 모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전 연구교수는 “영국에서 발달한 장애학은 주로 사회구조와 정책적인 문제에, 미국에서 발달한 장애학은 장애인 개인의 심리와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 연구교수는 이런 장애학 내부의 차이에도 “‘당사자주의’는 장애학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이라며 “장애학의 연구주체는 ‘당사자주의’를 가장 기본적인 요건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 연구교수는 “당사자주의와 당사자는 다른 개념이며, 장애학의 연구주체는 생물학적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의 대결적 구조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치관의 차이에서 당사자주의냐 아니냐의 문제”라면서도 “생물학적 장애인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장애인 당사자성을 어느 정도 갖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전 연구교수는 “겉으로는 장애인이면서 속으로는 전문가주의를 옹호하는 장애의 ‘상표화’와 ‘무기화’는 경계해야 한다”라면서 “궁극적으로는, 이익 없이 혹은 손해를 보면서도, 가치지향의 차원에서 장애인권운동을 할 수 있는 열정과 끈기가 있는 이라면 장애학의 연구주체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이어진 토론에서 한 참석자는 “생물학적 장애인이라는 것이 당사자성을 어느 정도 가진다고 전제하는 것은 장애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장애학의 기본 패러다임과 충돌하는 것 아닌가”라며 “결국 누가 ‘당사자’인가, 누가 ‘장애인’인가도 다시 질문해 봐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 연구교수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발제를 준비하면서도 계속 고민이 됐다”라면서 “그럼에도 장애인 당사자의 ‘세력화’ 자체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는 기존 사회복지학계 등의 인식에 맞서 장애인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당사자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토론에 참석한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 이호선 연구원도 “당사자주의는 정치적 사안이기도 하다”라며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기관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비율을 50% 이상으로 하도록 하는 것 등은 그 기관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이기에 여전히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세미나에 참석한 청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