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의 한 중학교에서 지적장애 학생이 동급생으로부터 ‘담배빵’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 학생은 자신에게 가해를 가한 학생들을 지목했으나 학교의 무관심과 경찰의 초동 대응 미흡으로 경찰은 증거가 될 수 있을만한 어떠한 것도 확보하지 못했다.

경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으며 그 사이 피해 학생은 2차 피해를 당했다.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장애인단체들은 진실 규명을 촉구하며 나섰다.

# 피해 학생은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과 여전히 함께 학교 다녀

지난 5월 4일, 김아무개 군(중2, 16살, 지적장애 2급)의 누나는 김 군의 등 쪽 허리께에서 붉은색의 동그란 상처를 발견한다. 누나가 자세히 보려고 하자 김 군은 강력하게 거부했다. 며칠 후, 또 다른 상처를 발견한다. 수상한 낌새에 김 군의 누나와 어머니 박영민 씨는 김 군을 데리고 피부과에 가니 의사로부터 “담배로 지짐을 당한 것 같다”라는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확신한 박 씨는 학교를 방문했고, 김 군은 이름을 가린 학교 앨범에서 가해 학생으로 3명을 지목했다. 가해 학생 이름을 써보라는 말에 김 군이 써낸 이름은 앨범에서 지목한 3명과 일치했다. 

5월 19일 용인동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던 날 김 군은 ‘화장실, 산, 담배’라는 글자를 종이에 썼다. 지적장애에 언어장애가 있는 김 군은 평소 가족과 필담으로 소통한다. 김 군이 다니는 행복발달센터의 협회장은 김 군을 따라 학교 옆 산을 올랐다. 철조망을 지나 산 중앙 운동기구가 있는 곳까지 익숙하게 걸어 올라간 김 군은 운동기구 앞에서 ‘담배빵’을 당할 당시의 자세를 취했다. 또한 멱살을 잡히고 주먹으로 배를 맞았다고도 행동으로 보였다.

앞서 5월 16일, 박 씨는 학교 측에 한 달 치의 CCTV 백업 요청을 했으나 6월 초, 경찰로부터 5월 2일 하루 치의 CCTV만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CCTV는 저장 시 최근 15일까지만 저장되는데 학교 측은 사건이 일어난 5월 4일 이후의 CCTV 내용은 저장해두지 않은 것이다. 유일하게 확보한 5월 2일 CCTV에 사건의 실마리가 될만한 내용은 없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용인시교육청에 감사를 요청했고 교육청은 학교의 자의적 판단으로 5월 4일 이후 CCTV 백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교장, 교감, 생활인권 부장에게 행정처분을 내렸다. 행정처분 수위에 대해선 “개인 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라고 교육청 감사과는 밝혔다.

박 씨는 흡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소변검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5월 15일, 학생부장이 주차장에 내려가 있는 사이 가해자 부모와 학생들만이 있는 상태에서 검사가 이뤄졌다. 이에 대해 박 씨가 재검사를 요구하여 6월 18일 재실시를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2주가량만 흡연을 하지 않는다면 소변 검사를 통해 니코틴 확인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박 씨는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부모로부터 “왜 애꿎은 애를 잡아서 이렇게 하느냐”며 모욕을 당해야 했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 박영민 씨가 11일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진실규명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건발생 후, 김 군은 한 달가량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그 후 학교에선 조치를 취하겠다며 김 군을 특별반에 머무르게 했고, 현재는 사건이 일어난 반을 떠나 다른 반으로 이동해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 학생은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며 지난 9월엔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중 1명에게 욕설을 듣는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 군의 누나는 “당연히 경찰이 진실을 규명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경찰은 내내 기다리라고만 했다.”라면서 “지적장애를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며 참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박 씨는 산에 올라가 현장에 있던 담배꽁초들을 주워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타액 체취 검사 결과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과 불일치하다고 결론지었다. 박 씨는 “경찰은 더 요구할 것이 있느냐며 없으면 수사를 종결하겠다고 했다. 경찰이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이건 내가 증거를 찾아야 했다.”라며 “경찰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만 조사할 뿐이었다”라고 갑갑함을 전했다. 

결국 박 씨는 경기지방경찰청에 동부경찰서 수사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고 이후 경기지방경찰청 수사이의팀에서 수사를 진행했으나 지난 10월 31일 이마저도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다.

김 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도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었다. 같은 반 학생이 각목으로 김 군의 허벅지를 때린 것이다. 당시에도 김 군의 어머니 박 씨는 학교를 찾아가 이에 대해 항의했다. 하지만 다행히 학교 측의 적극적 대응으로 더는 문제 삼지 않게 되었다.

▲지난 10월 22일~31일까지 학교 정문과 후문에서 박영민 씨와 김 군의 누나는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은 학교 정문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박 씨. ⓒ박영민 씨

그러나 이번 사건에선 달랐다. 지난 10월 22일~31일까지 학교 정문과 후문에서 박 씨와 김 군의 누나가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자 교장은 김 군의 누나에게 다가와 “취직하기 힘든 시기에 이런 걸 하고 있느냐. 시위 그만하면 안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김 군의 누나는 “담임교사 또한 이 일을 처음 제기했을 때 윗몸일으키기를 많이 해서 상처가 났다고 했다. 어이가 없다.”라며 학교 측의 태도에 분노를 표했다. 

박 씨는 “아이가 비장애아동과 어울리며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일반 학교를 보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라며 “내가 만약 돈과 ‘빽’이 있다면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며 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 장애인단체, 경기도교육청에 관리·감독 책임 물어

이에 경기도지역 장애인단체들은 11일 오전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학생의 학교폭력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경기도교육청이 나설 것을 촉구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도건 집행위원장은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교 측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대해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학생을 보호하고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할 담임은 수사권을 갖고 오면 만나겠다며 면담을 거부했다”라고 밝혔다.

이 집행위원장은 “학교 측은 사건 해결을 위해 설문지만 돌렸을 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가 어떻게 진실을 규명할 수 있나”라며 “학교는 지적장애, 언어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이는 명백한 학교의 직무유기다”라고 꼬집어 말했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최진태 사무국장은 “피해자 보호도 안 됐을뿐더러 사건이 기각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재수사를 촉구했다.

김 군의 어머니 박 씨 또한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지난 6개월의 시간은 가족에게 고문의 시간이었다. 가해자 부모들에게 당한 모욕감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라면서 “진실 규명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제2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경기교육청에 해당 학교에 대한 관리·감독의 책임을 물으며 기자회견 후 교육감 면담을 요구하는 민원을 접수했다. 이들은 △장애학생의 특성을 반영한 장애학생인권조례 제정 △해당 중학교에 학교폭력위원회 감사 실시 △실질적인 장애인 인권교육 시행 △해당 중학교에 피해 학생과 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지원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